철학의 존재론 시리즈 14편 : 중세 철학이 말하는 신과 존재의 관계

오늘은 철학의 존재론 시리즈 14번째 시간입니다. 중세철학의 핵심 주제인 신과 존재의 관계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존재의 빛, 보나벤투라의 신의 흔적, 아퀴나스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신 개념을 중심으로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탐구해보겠습니다.

1. 들어가며: 신과 존재, 철학의 중심 질문

“존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신은 존재의 근원인가?”
이 두 질문은 고대에서 중세로 이어지는 철학의 중심을 이루어왔다.
특히 중세철학에서 신과 존재의 관계는 단순한 신학의 주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사유의 핵심 축이었다.
중세 사상가들은 신을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ipsum esse subsistens)로 이해했다.
이 글에서는 중세철학의 주요 인물인 아우구스티누스, 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을 중심으로 신과 존재의 관계를 탐구해본다.

2. 고대철학에서 중세철학으로의 전환

중세철학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 철학이었다.플라톤은 존재의 근원을 이데아 세계에서 찾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의 결합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설명했다.

하지만 중세에 들어서면서 철학은 신 중심적 세계관(theocentrism) 으로 전환된다.이제 존재의 궁극적 근거는 더 이상 자연이나 이데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된다.이 변화는 단순히 신학의 영향이 아니라, 존재론 자체의 구조적 전환이었다.


중세철학자들에게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천이자 존재 그 자체”로 이해되었다.

3. 아우구스티누스: 존재의 빛으로서의 신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은 존재의 근원이며 동시에 진리의 빛이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존재한다”고 말한다.
신은 비존재로부터 존재를 부여하는 창조자이자,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내적 빛(inner light) 이다.

“너희가 참된 존재를 찾는다면, 너희 마음속의 빛을 바라보라. 그 빛은 신에게서 온 것이다.” — Confessiones

아우구스티누스의 존재론은 플라톤적 사유기독교 신앙의 결합이었다.
그에게 신은 존재의 근원적 원리, 지식의 조건, 선의 궁극적 근거였다.
즉, 신과 존재의 관계는 존재론적·인식론적·윤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4. 보나벤투라: 신 중심 존재론의 심화

13세기의 보나벤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더욱 체계적으로 신 중심 존재론(theocentric ontology) 을 발전시켰다.그는 “모든 존재는 신의 형상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즉, 세계의 모든 사물은 신의 ‘빛’과 ‘질서’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

보나벤투라에게 존재란 신의 현현(theophany) 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신적 원천을 반영하며, 신의 존재 없이는 아무것도 실재할 수 없다.
따라서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곧 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일이다.

“모든 존재는 신의 흔적(vestigium Dei)이다.” — Itinerarium mentis in Deum

이 사유는 단순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철저한 해석이었다.
보나벤투라에게 존재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며, 다시 신에게로 회귀하는 순환적 질서를 갖는다.

5. 토마스 아퀴나스: 존재 그 자체로서의 신

중세철학의 정점에 선 인물은 단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통합하여,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완성했다.
그의 핵심 명제는 다음과 같다.

“Deus est ipsum esse subsistens.”
(신은 존재 그 자체로서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아퀴나스에게 신은 존재의 원인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 그 자체다.
모든 피조물은 ‘본질(essentia)’과 ‘존재(esse)’의 결합체로서, 신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신은 본질과 존재가 동일하기 때문에, 존재의 궁극적 실체가 된다.

아퀴나스의 존재론 구조

구분피조물
본질과 존재분리됨동일함
존재의 원천외부(신)자기 자신
존재 방식유한하고 의존적무한하고 자존적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과 존재의 관계는 단순히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과 파생된 존재들의 형이상학적 관계이다.

6. 신과 존재의 관계의 철학적 의미

중세철학에서 신과 존재의 관계는 다음의 세 가지 철학적 의미를 가진다.

  1. 존재의 근원성: 모든 존재는 신으로부터 비롯된다.
  2. 존재의 참여성: 피조물은 신의 존재에 ‘참여(participatio)’함으로써 실재한다.
  3. 존재의 계층성: 신 → 천사 → 인간 → 자연 → 무생물로 이어지는 존재의 서열적 구조가 성립한다.

이러한 계층적 존재론은 단순히 종교적 상상력이 아니라,
존재의 질서와 목적성을 설명하기 위한 철학적 체계였다.

7. 근대 철학과의 단절: 신 없는 존재론의 등장

중세 이후 근대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신과 존재의 결합은 해체된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이후의 철학은 인간 이성 중심의 존재론으로 이동한다.
존재의 근원을 신이 아닌 주체(Subject) 로부터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하이데거나 마르셀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중세의 유산을 재해석하며,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 탐구했다.
결국 중세철학의 신 중심 존재론은, 오늘날에도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철학적 자극제로 남아 있다.

8. 결론: 존재의 빛은 여전히 신으로부터

“신과 존재의 관계”는 단순한 신학적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왜 존재하는가,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 탐구다.
중세철학자들은 신을 단순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원천적 실재로 이해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적 빛, 보나벤투라의 신의 흔적, 아퀴나스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신 —
이 세 전통은 모두 “존재는 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철학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오늘날 신앙의 여부를 떠나,
그들의 사유는 여전히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철학적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중세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존재를 알고 싶다면, 존재의 근원을 보라. 그곳에 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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